금융회사도 때론 ‘사기’를 친다…불완전판매
금융기관도 ‘상품’을 팝니다. 은행에서 가입하는 예금·적금, 신용대출·주택담보대출 등이 대표적인 금융상품이죠. 같은 치킨이라 해도 후라이드, 양념, 갈릭의 맛이 다르듯 사회초년생에게 이자를 더 주는 적금, 소상공인에게 금리를 깎아주는 신용대출 등 저마다의 특징이 있습니다.
신뢰가 생명인 금융기관에서 판매하는 상품이니 믿고 가입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거기다 상품을 판매하는 창구직원이 자기도 가입했다면서 지금 가입안하면 손해라는 말에 안넘어가기 힘들죠. 요즘처럼 초저금리 시대에 1%라도 높은 이자를 주는 곳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는 데 창구직원이 최대 20% 수익을 달성하는 상품인데 내일까지 접수 마감이라는 말에 홀린듯이 가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금융권에서는 이따금 ‘불완전판매’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불완전판매란 금융회사가 금융소비자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중요사항들을 알리지 않았거나 허위나 과장으로 잘못 판단하게 만들어 상품을 판매한 행위를 말합니다. 금융 관련 법상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금융권에서는 통용되고 있는 말입니다.
마트에서 산 상품이 불량이면 교환을 하거나 상품을 돌려주고 돈을 환불받으면 됩니다. 반면 금융상품은 상품에 가입한 뒤 짧게는 수개월, 길면 수년 후에나 불완전판매였음이 드러나고, ‘잘못 샀구나!’라고 무릎을 치게 됩니다.
그것도 한두 푼이 아니라 내 집 마련을 꿈꾸며 오랜 시간 부었던 저축, 십수 년 차곡차곡 쌓인 퇴직금을 홀랑 날릴 수도 있습니다. 치킨은 뜯는 순간 닭고기 상태가 나쁜지, 치킨무가 상했는지 느낌이 오지만 금융상품은 판매하는 은행원 또는 증권사 직원의 설명에 의존해 가입하고, 손실이 발생할 때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그나마도 예·적금이나 대출 상품은 금리가 높은지, 거치 방식이 어떤지 정도만 알면 되는 단순한 상품인 반면 각종 보험은 물론 채권·펀드·파생상품 등의 설명을 들으면 누구나 머리가 어지러워집니다.
이자 몇십만원 더 받으려다 수백만원, 수천만원 종잣돈을 날리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하다못해 휴대폰 하나 바꿀 때도 외계어투성이의 ‘스펙’을 줄줄이 외는데, ‘내 피땀눈물’의 결정체인 소중한 재산을 맡기면서 ‘알아서 잘 해주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안일하기 짝이 없는 자세입니다.
◆저축은행·동양 사태, DLF·라임 피해자…왜 당했을까
최근 10년 새 대표적인 불완전판매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면, 금융 거래 시 불완전판매를 피하기 위해 경계해야 할 지점이 엿보입니다.
‘2011년 저축은행 후순위채’ 사건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에 몰두해 온 전국 저축은행의 부실화로 출발했습니다. 이때 저축은행은 고객들에게 원리금 보장도 되지 않는 ‘후순위채권’을 떠넘겼습니다.
매일 새벽 생선 팔고 채소 팔아 모은 돈을 하루아침에 날린 우리네 어머님들이 후순위채가 무슨 뜻인지 알았을까요. 부실 가능성이 높아 시장에서 팔리지 않으니 금리는 당연히 높았을 테고, 직원들은 오랜 고객에게 “우리 은행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하다”고 안심시키겠죠. 일반 예금보다 금리 1~2% 더 주는 ‘특판상품’ 정도로 알고 가입한 고객들은 실제로 정말 저축은행이 문 닫고 나서야 ‘금융회사도 사기 친다’는 걸 깨닫습니다.
2013년 동양증권 CP(기업어음)·회사채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양그룹은 한때 재계 순위 5위까지 오른 유명한 재벌기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건설경기 부진으로 그룹 주력인 동양시멘트를 비롯한 비금융계열사 실적이 나빠지자, CP와 회사채를 찍어내 부족한 돈을 끌어모은 뒤 이를 동양증권 등 금융계열사를 통해 개인 고객에 판매했습니다. 2013년 9월 기준 동양증권이 판매한 CP·회사채 중 개인고객이 4만명, 금액만 해도 1조5000억원 이상이었다고요.
그러나 같은 해 9월30일과 10월1일 동양그룹 5개 주요 계열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투자자들이 갖고 있던 어음과 회사채도 휴짓조각이 됐습니다. 저축은행 사태와 마찬가지로 증권사 임직원들이 동양그룹 계열사들의 부실을 알면서도 숨긴 채 CP·채권을 발행했고, 투자자에게도 ‘설마 동양이 망하겠냐’라며 투자를 권한 게 문제의 원인이었습니다.
작년부터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해외금리연계 DLF(파생결합펀드),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사태 역시 상품은 다르지만, 맥락은 비슷합니다. 예금 금리 연 1%대도 어려운 시대에 ‘3~4% 금리를 기대할 수 있다’며 투자자의 눈길을 끌고 “원금보장 상품은 아니지만 유럽 선진국이 망하지 않는 한 손해 볼 일 없다”고 장담한 사례가 허다합니다.
은행·증권사는 ‘원금손실 0%’라고 마케팅을 펼쳤지만, 알고 보니 “원금손실(확률이) 0%(에 가깝다) 고 말했다”는 웃픈 변명도 나왔다고요. 더욱이 전화 등으로 상품을 설명한 뒤 금융회사 직원이 고객 대신 서류를 작성하거나, 치매 등 질환으로 고위험 투자가 불가능한 고령의 고객에게 투자를 권유하는 황당한 경우도 드러났습니다.
◆불완전판매 무서워 예적금만?…’감당할 수 있는’ 투자가 바람직
앞선 불완전판매 사례를 보고 혹자는 ‘금융회사가 속이려 한다면 대부분 고객은 속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예·적금이나 해야지’라는 결론에 다다를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불완전판매는 비교적 자주 발생하지 않는 ‘사고’입니다. 원금 보장 상품으로는 의미 있는 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려운 초저금리 시대, 이른바 ‘중위험 중수익’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기법의 금융상품은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는 선에서 충분히 시도해볼 만합니다. 또 훨씬 더 많은 은행원과 증권사 직원들은 고객의 투자성향에 맞는 상품과 투자 솔루션을 안내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결국 불완전판매는 금융회사의 근절 노력과 함께 투자 이전에 꼼꼼히 따져보는 개인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우선 자신의 투자성향을 정확히 파하는 게 먼저입니다. 더 이상의 근로소득이 어려운 60~70대 노년층이 은퇴자금을 원금손실 가능성이 높은 파생상품에 투자한다면 누가 봐도 고개를 갸웃거리겠지요. 투자 목적이 무엇인지, 손실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투자자 스스로 고민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상품 설명 과정에서 교부되는 설명서를 꼼꼼하게 살피고, 각종 서명에도 신중해야 합니다. 은행원이 “동그라미 치는 곳에만 서명하세요”라고 재촉해도 “기다려 보세요. 아직 못 읽었어요”라고 해야 합니다.
원금손실 가능 상품에 가입해 본 경험이 있더라도 고위험 상품에 투자할 때는 몇 번이고 신중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DLF로 손실을 본 투자자 중 다수가 몇 차례 만기 후 재가입을 한 경우였습니다. 서너 차례 4~5% 수익을 냈더라도, 이번에는 70~80%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만에 하나 불완전판매로 손해를 봤다면 금융감독원의 금융분쟁조정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