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로 이중고 겪는 여성들…1950년대로 되돌아가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이중고 겪는 여성들…1950년대로 되돌아가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전 세계 직장인의 ‘근무 문법’이 변했다. 재택 근무와 익숙지 않은 화상 회의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특히 여성들이 일-가정 양립에서 난관에 봉착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재택근무

[출처: 셔터스톡]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는 부부가 있다. 아이들을 돌보거나 가사를 하는 건 대부분 여성들의 몫이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는 ‘저글링’을 본의 아니게 요구당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가 활개를 치던 더블린에서 지난 몇 달 동안 두 명의 아이를 돌보면서 자기 업무까지 해내야 했던 한 여성 재무 임원은 “그냥 살아남는 수 밖에 없다”고 FT에 털어놨다. 그는 “일하는 엄마로서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다”라고 말했다.

 

직장맘이 힘들어진 이유 중의 하나는 코로나로 학교나 유치원 등 돌봄 기관들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돌봄 노동 역시 중요한 노동임이지만 무급 노동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이런 약한 고리가 코로나 때문에 끊어지면서 그 중요성이 새삼 부각된 것이다.

 

유네스코는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 15억 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 탓에 여성들은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아이까지 돌봐야 한다. FT는 영국 엄마들의 근무 시간 중 47%는 육아와도 연결돼 있었지만 아빠는 30%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런던에 본사를 둔 한 자영업자 여성은 “부부 둘 다 일을 할 때, 홈 스쿨링에 관한 책임은 대개 여성 쪽에 있는 듯 하다”고 말했다. 3살과 6살짜리 아이를 둔 뉴욕의 금융 회사 직원 로렐레이는 “업무 회의를 하고 전화를 받으면서도 1학년짜리 아이 과제를 봐줘야 했다”면서 “나를 위해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하거나, 계획을 세우는 데 시간을 보낼 수 없어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남편이 독일에서 코로나를 맞이한 동안, 뉴욕에서 아이 2명을 돌보는 ‘독박 육아’ 상황에 처한 크리스티아나 라일리 도이체방크 미국 최고경영자(CEO)는 “매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FT는 “코로나 이후 우리는 (여성이) 돌보미 역할을 하면서도 임금 노동자자 역할까지 해야하는 1950년대로 돌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covid19

[출처: 셔터스톡]

 

‘여자 선배’들의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예비 엄마들은 벌써부터 걱정이다. FT는 “임산부들은 직장 내에서 합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현재의 노동 시장이 각박하기 때문에 당연한 권리(모성 보호)를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칫 임신과 출산이 실직으로 이어질까 두려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국 런던의 에너지 기업에서 일하는 두 아이의 어머니는 “여성들에게 회사가 후진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출산 휴가 중인 여성들을 이유로 가임기 여성들을 고용하지 않으려는 회사를 상대로 여성들이 싸워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집에서 가사를 도맡아줄 반려자가 있는 남성 동료들은 일-가정 양립을 떠맡은 여성 직원의 고충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게 여성들의 반응이다.

 

가령 근무 중인 남편이 어쩌다 영상 통화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때, 그런 행동은 무척 사랑스럽게 여겨진다. 반면 같은 통화도 엄마가 하게 되면 ‘커리어적으로 자살에 가까운’ 일이 되어 버린다. 남성이 어쩌다 육아나 가사를 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행위인 반면, 여성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여성들이 ‘불리하다’고 느끼는 이유다.

 

그나마 둘 중 하나라도 육아를 맡아줄 사람이 있으면 다행이다. 싱글 마더, 싱글 파더 등 편부모 가정의 경우는 손 벌릴 곳조차 없다. 일하는 여성들의 가사 부담을 분석한 책인 ‘제2의 변화’의 저자 알리 헉샤일드는 “아이들의 모든 부담을 떠안는 편부모 가정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라고 분석했다.

 

 

여성 일자리 3분의 1은 저임금 직종

 

코로나로 인해 여성의 일자리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국에서 코로나 여파로 인해 대공황 이후 최악의 실업 대란이 빚어진 가운데 여성이 남성보다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CNN은 “과거의 경기침체는 남성 위주 산업에 타격을 줘 남성 실직자가 크게 늘었다”면서 “특히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 때문에 건설업, 제조업에 종사하는 남성들이 대량 해고돼 ‘맨세션'(man-cession)으로 불렸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는 반대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노동부의 4월 실업률 통계를 보면 여성 실업률이 15.5%로 남성(13.0%)보다 높았다. 여성 중에서도 흑인 여성(16.4%)이나 히스패닉계 여성(20.2%) 등 유색인종 여성의 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았다. 미국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PI)에 따르면 여성이 급여 근로자의 50%를 차지하지만 3월 일자리 감소분의 59%는 여성 일자리에서 발생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타격이 여성 종사자가 많은 업종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여성 고용이 많은 업종이 타격을 입었다. FT는 “특히 코로나로 타격이 컸던 지난 4월 미국에서 2050만 개 일자리가 증발했는데 그 중 770만 개는 여성 고용이 많은 (식당, 호텔 등)접객 업종이었다”고 보도했다.

 

경제학자인 케이트 반은 코로나로 인해 여성 실직자가 많이 발생한 이유로 “원격 근무가 어려운 접객업이나 소매업에 여성 종사자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무직 등 정규직 일자리는 코로나 감염을 막기 위해 재택근무가 가능하지만, 계산대 직원, 미용실 등 서비스 업종은 재택근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벌이도 적은데다 코로나 위험에도 그대로 노출된 일자리다. 이마저도 언제 일자리가 없어질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강하다.

 

이처럼 불리한 근로 여건에 놓인 여성들에게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불안한 일자리마저도 가정과 양립해야 한다는 점이 여성들을 한층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여성을 옹호하는 비영리 단체인 ‘유럽의 촉매’에서 일하는 앨리슨 짐머만 상무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남녀 간의 불평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셔터스톡]

 

남녀 문제에 인종 문제까지 결부되면서 코로나 시대 일자리 문제는 전 세계에 만연한 불평등의 깊은 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FT는 “미국의 경우 여성 일자리 3개 중 1개는 유색인종 여성이 주로 일하는 저임금 직종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흑인 여성이 전염병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비율은 백인 남성의 2배”라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재택근무를 할 수 없어 바이러스에 더 많이 노출되는 사회적 약자들 중에도 유색인종이 많다. 에반스 미셸 에반스 미국국립노화연구소 교수는 “이런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다수가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라틴계”라며 “바이러스에 더 쉽게 노출되는 경향이 있으며 기저질환 등도 더 많이 갖고 있어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경제매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코로나19가 만연한 가운데, 더 많은 사람들이 약자와 강자의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는 경제 구조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XingFu / 기자

첫 직장은 제조업체였다. 국내 유력 경제신문 입사 후 증권부, 금융부, 국제부 등을 거쳤다. 현재 종합일간지에서 경제와 국제 이슈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 학부에선 어문학을, 대학원에서는 경제학을 배웠다. 경제를 잘 알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어려운 경제, 금융 뉴스를 가능한 알기 쉽게 풀어가기 위해 오늘도 열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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